작성일 : 06-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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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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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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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한차례 비가 오고 나서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가을느낌이 드네요.
가을과 더불어 제게 불현듯, 우울증의 전초전을 알리는 듯한 증상이 찾아왔었
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일조량이 떨어지면 급격히 불안해하거나 우울해 합
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그런 느낌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느낌이 찾아와서 당
황했습니다.
차량 5부제 때문에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 없는 날이었는데요,
프로젝트(의료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논문을 읽으면서 전철을 타고 있었습니
다.
저로서는 이 주제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 그 중에서도 암환자 통증 치료
라든가 증증병명 통보 대화 같은 주제들이 다음 년도 과제입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잘 보내드렸다는 안도감과 스스로의 영혼
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충만감에 차서 이제는 그런 주제를 다룰 수도 있
고, 아니 오히려 내가 스스로 겪은 사람이니 더 잘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한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중해서 논문을 읽다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두 분이 가시면서 괴로와 하던 모습들, 그 순간순간 저의 가슴을 에이는 듯한
고통, 깊은 공감과 연민이 가슴 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
습니다.
그때까지도 제 마음 속의, 아직 아물지 못한 깊은 아픔과 괴로움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해서도 계속해서 그 느낌이 증폭되더니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
게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하는 말을 하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몰랐습니다. 제가 왜 그러는 건지, 그것이 심각하고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것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원래 좋지 않은 심장계통에 거북함이
느껴지고 우울증의 시작과 비슷한 괴로움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더 못견디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깨달았습니다.
아직 나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것을요.
그런 나를 괴롭히고 헤집어 내는 일이 얼마나 내게 가혹한 일인지, 그걸 무시
하면서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 제 안에 있고 제 주변을 맴도는 안좋은 기운들에
게 얼마나 반가운 에너지가 되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얼마나 강한 빛과 힘으로 그것들을 물리치고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함께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로움으로 엄마를 부르고 이야기하면서 안간힘을 써서
빛을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하면서, 너무나 약하고 멀어
져 보이는 빛을 생각하고 기진맥진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쯤 잤을까요,
일어나 보니 그 짓누르는 느낌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기진맥진해서 잠이 들었고 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꿈에서 깨어났
기 때문에 (마치 딴 세계를 헤메다 온 것같았습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 내 육신이 있다는 것이 어쩐지 어리둥절한 그런 느낌) 무슨 꿈을 꾸
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고 또 그걸 기억할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어두운 짓누르는 느낌이 씻은 듯이 싹 가시고 없어졌더라는 것
입니다.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나를 관찰하고 있노라니,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의 양은 같다 할지라도 내가 어느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가에 따라 때로는 그 충격을 너끈히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고 또
때로는 맥없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어두운 기운에 사로잡혔던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전후해서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영혼의 평온을
되찾아 갔던 제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죄의식을 가졌던 것같습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던 동생들에 비해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제 자신이 어쩐지 비정상적이거나 매정하게 느껴졌었던 것같고 공연히 미안하
기까지 했던 것도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제 영혼이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건강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슬픔과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도 이겨낼 수 있
는 힘이 있었던 것인데, 죽음 그 너머를 보고 또 빛 속에 계신 부모님을 보
며, 아 이 분들은 내가 연민을 느낄 대상은 아닌 것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
던 것인데, 저의 감성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와 했던 모양입니다.
사람이 이성으로 깨닫고 자신을 타이르는 것에는 이런 한계가 있는 것같습니
다.
나의 인간적인 감성 부분이 시들시들 괴로움에 애타고 있는데 저는 그것을 애
써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선생님이 쓰신 글 중에, 이 만남은 단 한 번 뿐인 것이니 충분히
슬퍼하라는 글을 생각하면서 제 감정에 길을 터주어 보았던 것입니다.
결과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는 나의 영혼과 근원적인 존재가 지금의 나에게 이
육신의 옷을 입혔을 때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이 육신
의 옷 때문에 결코 만만하게 벗어날 수 없는 육체적, 감정적 한계가 있을 것입
니다. 그걸 무시하고 영적인 자유를 구하겠다는 것은 한낱 망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될 리도 없는 일이겠구요.
나는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막연한 생각이지만 끝없이 외롭게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간신히 찾은 영혼의 빛이란 것이 끈으로 매어놓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하고 바라보며 찾아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
다.
잠시 방심하고 (잘 연결되어 있는 줄 알고) 딴 곳을 보는 동안 순식간에 한없
이 약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왜 그럴까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이 뼈에 사무치
도록 서운하고 견딜 수 없이 증오스럽더군요. 그 순간 저의 (영혼과 몸의) 건
강은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겪고 부딪히는 하나하나의 일상과 관계가 진중한 의미로, 각성과 성장의
기회로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만, 아직 저는 한참 약하고 힘들어 하는 것같습
니다.
역시 부단히, 꾸준히 노력하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겠지요.
누군가 게시판에서 말한 것처럼, 선생님을 생각만 해도 많이 힘이 됩니다.
항상 그곳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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