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11-01 00:00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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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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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저는 몹시 아팠습니다. 일을 마치면 그냥 책상에 엎드려있다가 집에 가곤 했어
요.
조절이 안되는 공포감과 분노의 감정에 압도된 채로 한달이 흘러가고 있습니
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대부분 가족들)은 영문도 모르는채 제가 짜증을 내거
나 울거나 할때마다 황당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발단이 되는 일들은 아무것
도 아닌 일들이기때문에 가족들은 제게 다들 화가 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지요. 선생님. 그 말씀을 생각합니다.
전 태어나 처음으로 물건을 한번 집어던졌고 그 물건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
어 손등은 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는 대략 10월4일의 치료이후부터인것 같습니다.
열흘쯤전,엄마와 함께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법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정하게 걸었습니다. 엄마는 저
를 몹시 사랑스러워하는 눈매로 쳐다보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작은 다리를 건널때 바람이 조금 불었는데 제 웃옷의 벌어진 자락을 여며주려
고 엄마는 제 목에 손을 대셨습니다.그 직전까지 저는 편안한 마음이었고,엄마
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제 목에 엄마의 손끝
이 닿는 순간 화산처럼 화가 솟구쳤습니다.
전 엄마손을 세게 밀쳐내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내 몸에 손대지 마."그렇
게 말해버렸습니다.
엄마는 기분을 상하여 뒤도 안돌아보고 먼저 휭하니 가버리셨어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일시에 깨지고 전 뭐라고 해명해야할지 몰라 난감했습
니다.
언제나 이런것은 아닙니다. 요즘 갑자기 더 심해져버렸습니다.
어제(일요일) 강원도 ** 에 갔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문득 27년전 7-8살무렵에 살았던 그곳에 가고싶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3시간 걸려 찾아가서 지금은 폐허만 남은 산골동네에 들어
가 2시간 정도 바위에 앉아있다가 4시간 걸려 돌아왔습니다.
군인가족 관사의 한칸짜리 방이 있던 자리에 잡초가 솟아올라 검은 염소가 풀
을 뜯고 있었습니다.
27년전 그 방에서 혼자 벽에다 두 발을 얹고 장난을 하면서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 1979년이네.나는 7살.벌써 7년이나 살았구나. 시간이라는게 정말 지나
갈까. 내 몸도 정말 자라서 엄마처럼 커질까. 저 달력의 숫자가 변하고
2000,2001, 그렇게 숫자가 바뀌게 될까.
내가 정말 17살,27살,37살,그런 나이의 사람이 될수있을까.그런 날은 없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던 장소입니다. 그리고 산더미같은 시신이 차곡차곡
포개어져있던 무서운 꿈을 꾸었던 곳도 그곳입니다.
동생에게 주려고 학교에서 간식으로 받은 빵과 요구르트를 몰래 책가방속에
숨겨서 산길을 따라 돌아올때 동생이 절 부르며 구르듯이 언덕을 달려오던 모
습이 선하게 떠올랐어요.
언덕이었던 곳은 평지가 되고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저는 정말
30대가 되었고 커다란 몸을 가진 여자가 되어 거기 있었습니다.집앞에 서있던
세 그루의 미류나무가 늘씬하게 자란 모습으로 바람에 와스락거리며 변함없이
서 있었구요.
그곳은 폴란드의 마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인데 왜 거길 가서 마리를 생
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마리가 되어서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 아무것도 없다.아무도 없다.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이들은 떠난다. 나도 이
제 가야해." 찬바람이 부는 산과 빈들녁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
다.
만날 사람도,더 갈 곳도 없어서 두시간쯤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서울로 돌아
왔어요.
참 오래간만에 병원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좋은 글들을 읽었습니다.
731부대라는 말에 가슴이 움찔했습니다. 그곳도 아우슈비츠에 버금가는 곳이었
겠지요.
20세기에 들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미친 살상과 해악과 슬픔이 과거의 그 어
느 시대보다 엄청난 규모였다고 알고있습니다.
치료가 거듭되고 저의 내면에 채워진 분노와 공포와 슬픔을 마주보면서 막막
해질때,이만한 크기의 어둠이 낙엽처럼 쓰러져간 무수한 영혼들 각각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
기와 너무도 가까와서 슬픔의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겐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을테지요.
어떤 영혼은 굳건하게 상처를 추슬렀을테고, 또 어떤 영혼은 여전히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살고 있을거예요.
서기2000년을 시작한 인류는 여전히 진행중인 동료들의 고통을 통해서 과거 어
느때보다 큰 사랑을 일으켜야할 동기를 부여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삶과 죽음과 존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과 같
은 맥락의 다양한 연구와 보살핌들이 사회전반에 보편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구요.
거대한 어둠을 치유하는 것은 그만한 크기의 사랑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
다. 무엇보다 강하고,무엇보다 큰 힘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를 해오는 내내 대학살과 같은 참극을 "신의 뜻"과 연결시킨 적은 한번
도 없습니다. 우주는 인간이 인간에게 벌인 이 모든 아수라장속에서도 우리(가
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사랑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모든 영혼의 등을 부드럽
게 밀어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가는 길의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동기로 시작하여 오직 "사랑"이라
는 결과로 귀결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인가 봅니다.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은 "눈물닦고 걸어가는 것" 그뿐인가봐요.
저의 내부는 아직 난장판이지만 그런 인식이 희미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선생님병원의 홈페이지가 많이 변모된것을 보았습니다.
이름도 바뀌어 있어서 병원문을 닫으시는걸까하고 깜짝 놀랐어요.
예전보다 더 확대된 규모감을 느끼며 올려진 글들을 곰곰히 읽어보았습니다.
"아픈곳이 하나도 없기를 더이상 꿈꾸지말자."고 지난주 내내 생각해왔기때문
인지 초개아적정신치료가 질병이 없는 상태보다는 개인의 의식변화에 더 중요
성을 둔다는 부분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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