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6-14 00:00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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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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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촉촉해진 바람속을 걸어 출근했습니다.
어제 병원에 올라가면서 지하철안에서 잠깐-아주 잠깐- 걱정했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머릿속이 온통 깜깜했습니다.
여느때처럼 묵묵히 함구하는 시간이 또 이어지겠구나했었는데......어제 전 무
척 수다스러웠지요.
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대화에서 스치듯 가볍게 주셨던 말씀들이 제 안의 고민을 해결하는 중요
한 열쇠가 되었어요.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삶이 제가 느끼는 것처럼 혹시 정말 꿈일지
도 모르지만,그래도 성실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냥 그렇
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꿈꾸는 동안에도,그리고 어딘가에서 꿈을 깬 다음에도,계속 성실한 태도로 살
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렇게만 한다면 여러 개의 현실 중 어느 곳에 있더라도 별문제 없겠구나 생각
했어요.
학교에 들어가기전 아주 어릴때,혼자 숲속에서 놀다가 커다란 개미집을 발견
한 적이있습니다.
뿌려놓은 깨알처럼 바글바글거리는 일개미들의 움직임을 구경하려고 저는 바
로 옆 그루터기에 걸터앉았습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지만 개미들은 저의 존재
를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로 옆에서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는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
습니다.
어떤 개미는 제 발을 타고올랐지만,그 움직임으로 보아 역시 제가 거기 있음
을 아는것 같지는 않았어요.벌떡 일어나 개미집을 밟아부수지 않는이상 저의
존재를 모를것 같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무척 이상하고 신기했었습니다.
이렇게 큰 내가,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째서 나를 발견하지 못할까 생각했었
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마 그들은 너무 작고 나는 너무 크기때문일거라고 결론
을 내렸었죠.
그리고 문득, 지금 내 옆 어디엔가 -마치 내가 개미들을 바라보는 것처럼-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아주 커다란 존재가 있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
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알아차릴 수 없는 무엇속에 내가 있
는건 아닐까했어요.
잠깐이었지만 어린 저를 압도할만한 느낌이었고, 제 마음이 하늘너머 저 끝까
지 순식간에 팽창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지구가,저 하늘의 은하수가,우주가, 만약 개미보다 작은것이라면? " 그런
공상을 했었지요.
그날 저는 아주 심각해져서 저를 바라보고있을지 모르는 그 거대한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치기를 기대하며 그루터기에 앉은채로 하늘과 숲속을 한참동안 두
리번거렸어요.
혹여 내가 그를 발견하지못하더라도 그는 내 모습을 보고있겠지 했었습니다.
개미와 나처럼요.
막연히, 그는 아주 멋지고 좋은 분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 영혼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진지하게 여쭈었던 일 기억하세
요 ?
정말 궁금했지만,전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우산을 들고 걸어오면서 어릴적 개미집을 구경하던 날의 일을 떠올
리고 다시 영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치료를 통해 받은 느낌상, 영혼은 저와 아주 가깝고,크고,진정으로 강한 존재
인것 같습니다.
그가 늘 나와 함께라면,그가 나의 일부라면(내가 그의 일부인지 그가 나의 일
부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나이고 내가 그라면, 이렇게 무서워하며 살지 않아
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약이 심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오늘 아침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두려
움없이 마음이 평화로와지고 이 모든 상황앞에서 차분해졌습니다. 좋은 느낌
이었습니다.
그의 존재를 마음으로 느끼며 한걸음,또 한걸음,그 다음 한걸음을 모두 성실하
게 살아야지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 삶의 방침이 하나 세워지는 순간이었습니
다.
비가 많이 내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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