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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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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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3,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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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축제는 끝났고 붉은악마였던 우리들은
성숙한 시민답게 속속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던 중,
가슴을 때려맞은 듯 쿵 하고 왔던 것에 결국
눈물을 글썽이고 잠시 울게 되어 좀 끄적여 봅니다.
네.. 내일 늦게 치료시간이 있는 것 잘 압니다만,
그래도..이렇게 보내드려 봅니다. 자주 그랬듯.
월드컵을 통한 대한민국의 축제는 끝났고,
지구가 흔들릴만큼 거대한 열정을 내뿜은 탓에,
결정적으로 참 허탈했던 사건때문에(오심 논란)
여운이 더 아련하게 남는 것 같아요.
저는 축구에 거의 관심도 없었고,
월드컵이 있어도 조용히 혼자 응원한
어둠 속의 열혈팬이었죠^^ ^^
TV에서 매일같이 보여주는 붉은악마들의 응원모습에
빨간 티 한번 입지 않은 저로서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사실 저같은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도 월드컵을 보시긴 하셨겠죠^^
선생님도 한국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차가우면서도
가슴 속은 늘 뜨거우신 분이다라고..알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너무 심했나요? -.-
2002년때는 갓 결혼하고 늘 혼자여서
월드컵 때 길에서 혼자 빨간티를 사기도 했었지만 :D
그러나..최선을 다해 투혼을 벌였으나..결과는 탈락.
다른 것도 아니고..축구경기를 보다가
제가 "미친 놈"이라는 말을 한 적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에요..
좀 흥분했어요. 그 주심을 향해 저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어요. 딱 두 번.
그리고.. 그 때부터 저는...
너무 기가막혀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을
선수들의 마음 속으로 동화되어버렸어요.
"저 상태로.. 남은 시간까지.. 과연 잘 뛸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뛰어라 하고픈 말이
차마 가슴 속에서조차 나오기가 쉽지 않은 제 모습....
순간 먼 훗날..상담장면에서 상담자인 제 모습과
이렇게 저마저도 선수들과 함께 힘이 빠지고 있는 모습이
겹치면서.. 상담자, 치료자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된 점...
스위스전 때의 우리 선수들이 선생님의 치료실 의자에 누워
아파하는 환자들, 저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고..
선수들의 심정이 그대로 전이가 되어
이렇게 지켜보기만 한 나도 차마
"그래도 끝까지 뛰어라"하는 말이 목구멍으로 그냥 삼켜지는데..
아무리 이러한 상황에서도 감독은, 치료자는, 선생님은
"일어나 뛰어라"
"바보같을 정도로 오직 빛생각만 해라"
하셔야 한다는 것이...그렇게 하셨던 것이...
너무나 감사했던 것을 떠나서 그렇게 하는 일이 결코..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다시한번..온 몸과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어이없게 2대 0이 된 그 순간부터 선수들의 심정이
마치 2년 전 선생님 만나 가장 힘들었을 때의
제 심정으로 여겨지기만 해서..
그래도 경기 종료까지는 어쨌든 뛰어야 하니
힘겹게 애써 뛰는 선수들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그들의 그 심정을...지난 제 경험으로나마
감히..조금은 잘 알겠기에........
경기 후 이천수는 그만 눈물을 터뜨려버렸고..
누구도 그에게 남자답지 않다고, 운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모두는 이들이 밟아온 지난 과정을 다 지켜봤으니까요.
선배이자 코치인 홍명보가 잔디에 주저앉아 우는 이천수를
일으킬 때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테고,
주장 이운재가 그 커다란 장갑으로 벌개진 눈물을 삼키며 닦는 모습도,
조재진의 글썽이는 허망한 표정도,
담담하게 상대 스위스선수와 짧게 대화하는 박지성의 모습도,
주먹질을 할 정도로 화를 내던 감독의 굳게 다문 입도..
함께 뛴 모두의 모습에 역력했던 실망과 좌절..
그리고.
MBC에서 경기 후 "축구는..."이라는 자막을 내보내며
스위스전의 영상과 기운을 다 잃은 듯 힘빠진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담았고..
그 배경에 무척 낯익고 친숙한 곡이 들렸어요.
워낙 음악을 좋아했던 저여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수 마이클 볼튼이라는 것을 곧 알았는데
곧 화면에 뜬 자막은 "축구는 오늘...죽었다"
그 자막에 저는 잠깐 화가 났습니다.
이 방송사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 했어요.
물론 우리들의 심정을 저도 느꼈고, 너무나 허탈했으나..
"아냐.. 그건 아니다.."
제가 그 자막을 보자마자 곧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선생님과 지속해온 치료는 이렇게..
제 스스로 정화하는 힘까지 주고 있나 봅니다^^
축구는 오늘 죽은 것이 아니다..
오늘로부터 축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다..
쓴 잔의 패배감이 어떤 것인지 맛보았으니
그걸 밟고 일어서면 앞으로는 그에 맞는 결과가 올 것이다.
선수들에게 하는 말인지,
선생님 만나 정신치료를 받은(아직 받고 있는)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둘 다일 겁니다.
짧게나마 배경으로 깔린 클라이막스의 곡 멜로디에
순간 가슴이 멍해지고 너무나 귓전을 울려서 오늘 뒤져봤어요.
지난 2년 동안 흘린 나의 눈물은 얼마나 될까..
혼이 빠지도록 울어서 눈밑이 푹 꺼진 채 나돌아다닌 시간들이 얼마였던가..
너무 울어서 배게만 닿아도 고장난 수도꼭지 같았던 나의 눈..
성당에서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은
또 얼마였던가.. 너무 많이 울었던 나의 지난 모습들..
이 곡의 가사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제가 너무나 힘들던 중, 성당이나 이부자리 위에서
기도를 하던 것과 같아서 더 뭉클해진 것 같아요.
네.. 제가 이런 음악 하나에 빠져버려서,
또 스위스전의 드라마틱한 결과에 감상주의자가 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이 편지를 왜 보내는지 선생님께서는
조금이나마 제 마음을 이해하실 거라 생각해요..
저의 지난 2년과 살아온 과정들을 함께 나누셨으니까요.
알고보면 종교와, 교회와 거리가 무척 멀었던
어린 시절부터 제가 반해버렸던 곡이나
노래방 가면 종종 불렀던 곡이 하나같이 가스펠이었던 것은...
감성적인 저와 음악이라는 매체, 복음송의 메시지가 맞아떨어진,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그로부터 2년 뒤.
무너져 가는 저의 눈물을 취해주시고,
이 눈물들이 포도주가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노래가 제 마음을 또 한번 울립니다.
2년 전의 노래와 같이 이 곡도 복음송답게
마지막은 울부짖지만은 않아요..
그래서..지금은 비록 울지만.. 영원히 울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세계도 놀랄만큼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었고,
선수들의 투혼에 덩달아 손에 땀을 쥐며 웃었으며,
그들의 쓰라린 눈물을 통해 그 참 의미를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기에
혼신을 다해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와 지지를 그리고 기도를 보냅니다.
축구장에서든 삶의 무대에서든
쓴 눈물을 흘려도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모든 이들에게도,
저에게도, 그리고 선생님께도.
이만 줄입니다. 내일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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