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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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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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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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비가 많이 옵니다...
저는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울증을 얻어서,
지금도 비가 계속 오거나 우중충한 날, 혹은 길고 어두운 겨울밤이면
우울증과 싸우느라, 혹은 우울증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하곤 합니
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혹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면 그 두려움때문에 지레 우울
해지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기이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오더라도 올테면 오
라는 심정이 되어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큰 일을 연달아 겪고 난 뒤라 두려운 게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
지만, 그보다는 부모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제게 가르쳐주고자 하신 것, 생사의
엇물림과 영혼의 불멸성,
살아내고 겪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얽히고 짜인 관계들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생을 경험하고 영성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불행과 고통이 더 이
상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들을 이겨내고 보다 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항상 저는 선생님 책이나 게시판
에서 본 글귀들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제 나름대로
기억합니다만...)
저는 물론 전생을 체험해보지도 못했고 영혼과 빛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회의
와 의심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품고, 진리와 마주치기를 저어하
며 피해 다니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생각이 날 때마다 빛을 생각합니다.
저에게 빛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고 난해한 모습이라, 때로는 소용돌이처럼,
때로는 이런저런 색깔을 띄고, 또 때로는 파상형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빛을 보
면서, 아니 정말 이 빛이 맞는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빛이 저희 어머니와 저의 영혼을, (그리고 아마도 먼저 가신
아버지의 영혼을)이끌어 주고 지지해 주었으며 지금도 비춰주고 있다는 것입니
다.
어제는 별로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 회의에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었고 어제도 가기가 싫었습니다.
회의에 가기 직전에, 선생님 게시판에 실린 글 중 제가 좋아하는 글을 두 개
프린트아웃 해서 회의 시작하기 직전까지 읽었습니다.
"진리의 별에게"와 "사랑에 대하여"(?)였던 것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빛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소란한 회의장
에서 혼자 고요히 최면과 비슷한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리를 마주 대하는 처절함이랄까요, 그 치열함이 폐부를 찌르고 가슴이 벅차
오르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라는 안도감에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글에서도, 온 우주를 품에 안는 개미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한없
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의에 나온 사람들의 헛소리들이 더 이상 그다지 듣기 싫지는 않
게 되더군요.
항상 그런 자리에서는 사람들의 욕심과 이기심에 심사가 불편해지고, 어쩌다
제게 쏟아지는 비난의 부당함에 치를 떨기도 하고, 그러다가 도대체 어떻게 반
응해야 하는 것인지, 이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몹시도 고통스러워지곤 했습니다.
어제는, 글쎄요, 한심스러워 보이고 지겨운 것은 여전했지만, 모두를 다 감싸
안는다든가 하는 여유와 관용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렇겠거
니...하고 흘려보낼 수 있더군요.
자기들끼리 열심히 헐뜯고 싸우다가 갑자기 가만히 있는 저를 걸고 넘어져도,
그저 피식 한 번 웃고 말았더니 제풀에 화제를 옮기더군요.
제가 속해 있는 그룹 중 가장 이기심으로 뭉친 사람들의 그룹인 그 모임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밉살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제가 마음의 갈등으
로 인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최악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그저 평이한 사태였겠지만 저에게는 인간관
계에서 장족의 발전을 의미하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의 한없는 아름다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하게 느껴
지는 것,
다른 사람들의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언행들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성의와 사랑
을 읽고 관용할 수 있게 된 것,
밤에 혼자 자는 데 대해 그전처럼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 것,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가신 길을 슬픔과 함께 미소로 지켜 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제게는 빛을 타고 내려온 크나 큰 선물입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전생과 영혼에 대해 이성적인 성찰을 했다 해도,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떠나심이 없었다면, 깨달음을 얻는 데에 훨씬 더 오랜 시
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선생님을 조만간 찾아갔을 것이고, 빛을 보게 되
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필사적으로 의심하고 부정하는 기간이 꽤 길었을 것입
니다.
어머니에게 평화와 안식을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그 의심과 회의
를 일단 접어두고, 무조건 믿고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같습니다.
저는 막연히, 부모님이 가시면서도 제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가신다고 믿었
었습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부모나 형제라는, 뗄레야 뗄 수 없이 깊이 얽힌 관계로 묶
인 사람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돕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삶과 죽음의 모든 과정이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신과 얽힌 관계들에 대한
준엄한 가르침과 실천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살아 생전 어머니는 저희들과 더불어 무한히 주는 사랑을 실천하고 체험하셨
을 테지요...
어제는 어머니의 꿈도 꾸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꿈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그만큼 그 고통과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나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자마자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꿈에 나타나서 웃어주셨었는
데요...
뒤집어 말하면,
이제는 제가 버틸만 한 기력이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더 힘들어질 것같습니다.
날씨가 정말 난해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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