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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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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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우
 조회 :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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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시작된 이후 오늘까지 전 조금씩조금씩 계속해서 나아져왔습니다.
선생님께 치료받았던 모든 시간 중 제 안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건
아마 지금일거예요.
낯설게 보이는 내면을 정리할 수 없어서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도 못했습니다.
제 안의 변화를 느끼며 설레이다가도 문득 어느 순간부터 예전과 똑같이 돌아
가버리면 어쩌지싶어서 불안하기도 했어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돌아갈 일 같은 건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시던 걸 생각
하며 지냈습니다.
지난 한주동안 저희집은 이런저런 변동으로 부산스러웠는데,크게 힘들어하지
않는 제 마음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내가 이제 냉정해진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구요.
동생이 아기를 낳았을때, 아기를 만나고 돌아오던 그날부터 저는 몹시 걱정을
했었습니다.
석달뒤에 동생이 어떻게 아기와 떨어져서 다시 출근할수 있을까 싶었고, 두사
람이 떨어지는 것을 보아야하는 것이 생각만 해도 싫었습니다.
"헤어진다","떨어진다."하는 생각부터가 잘못인걸 알면서도 , 엄마와 아기는
그냥 무조건 함께 있어야할 것 같은 억지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
다.
엄마는 아기에게,아기는 엄마에게 무엇보다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묶이곤 했습
니다.
아기에게 쏠리는 제 마음도 불편했지만 동생의 출근날이 다가오는 것도 숨이
막힐지경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내 혼자 끙끙거렸습니다. 느끼는 그대로 말하면 비난당하는 경우가 많
아서 항상 조심합니다.
3월 두번째 치료에서 아기와 연관된 그런 장면들을 본 뒤의 변화는 지난번 편
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말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아기를 만나게 되었을때,저
는 아주 편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런 상태는 변하지않았고 오히려 제 안에 더욱더 안착되었습니
다.
우리가 겪어나가는 모든 일들의 더 깊은 이면에는 그 자신의 동의와 선택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과,그 모든 경험들이 고통만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아
주 큰 사랑으로 언제나 보살펴진다는 생각이 마음 어딘가에 굳게 박혀서 저를
흔들리지않게 해 주었습니다.
동생의 출근과 그로인한 두사람의 생이별(?)도 그럭저럭 지켜볼 수 있었구요.
가뜩이나 운전이 서투른 동생이 석달동안 쉬다가 다시 핸들을 잡던 아침-그때
도 비가 왔어요.-에도 큰탈없이 넘어갔습니다.(선생님말고는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도 모르겠지요.)
밤마다 야근인 동생은 아기에게 한번이라도 젖을 먹이려고 자정가까운 시간에
도 차를 몰아 집으로 옵니다. " 직장에서 이제 출발한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
고도 전 큰 동요가 없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동생의 차가 무사히 당도하기를 기다리며 덜덜 떨거나 혹은 울
거나 했을거예요.
" 아무래도 동생의 차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하면 온가족
이 짜증스러워했었죠.
그 부분의 공포감은 긴 시간동안 제게 너무도 쓰라린 부분이어서 몇 주 동안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지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 하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시절, 엄마가 그림때문에 어린 남동생을 놓아두고 하루종일 나가 계셨
을 때 엄마를 원망했었어요.저로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간 남동생이 여전히 갓난애처럼 보여서 동생걱정에 늘 초조했었
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밥도 먹지 않고 등을 꼬부린 채 잠든 아이가
측은해서 안아일으키며 자주 울곤 했었어요.
몇번인가 엄마에게 그림을 그만두면 안될까 해 보았지만 엄마의 입장은 언제
나 확고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엄마는 엄마대로,저는 저대로 ,이유를 가진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올때 선생님께 "제가 더 좋아질 수 있나요?"하고 여쭈었습니
다.
집으로 내려오다생각하니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
으로 들으셨을까하고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
어요.
예전보다 힘이 생겨있는 거라고 자신하면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치료때 마리를
보면서 그 모든 자신감이 다시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막막해진 마음으로 그
렇게 여쭈었던 거에요.
"이건 현실이야"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면서 점점 뚜렷해지는 제안의 변화들에
집중하며 힘을 내려합니다. 그 불편한 장면들이 저의 전생이든 아니든 어쨌든
전 변모하고 있으니까요.
화요일밤에 앓다가 어렵게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꿈속에서 선생님은 제 앞에다가 두툼하게 묶인 A4지 한뭉치를 툭 내려놓고 가
버리셨습니다.
깨알같이 타이핑된 종이를 휘리릭 넘겨보았지만 내용은 볼 수 없었습니다.
공부 좀 하라고 나무라시는구나싶어 꿈속에서도 뜨끔했었습니다.
아침 일곱시에 나와서 밤 열시에 들어가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어서 꽃이 핀 것
도 몰랐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위를 둘러보니 별천지 같더군요.
"겨울은 언제 끝나버린 것일까."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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